>
시대에 맞는 정부조직 개편 / 조경호(행정학과) 교수
조기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곧 출범한다. 진보든 보수든 역대 정부는 각자 나름의 논리와 국정 철학에 기초하여 정부 혁신을 추진했고, 정부 혁신 분야 가운데 가시적 파급효과가 가장 큰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하였다.
상황 인식
정부조직 개편은 부처가 수행하는 기능과 역할 및 그 수행 방식의 변화를 초래하여 부처 핵심 자원의 재편을 일으키기 때문에 집권 세력에게 정치 사회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권한 행사 수단이 되어 왔다. 그간의 정부조직 개편이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동시에 정부와 공직사회 길들이기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단기 미봉책들의 세트였다는 부정적 평가도 강하다.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탄핵으로 촉발된 국가적 위기와 새로운 국가체제 구현에 대한 강력한 국민적 요구에 직면한 새 정부도 나름의 국정 운영 패러다임을 정할 것이고 정부 혁신 목표를 세우고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조직 개편은 정부가 수행하는 기능의 기관 간 재편성 및 배분을 중심으로 정부 부처의 분화, 통합, 조정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정부조직 개편의 원리로서 분화와 통합은 서로 상보적 관계를 맺고 발달해 왔다. 분화의 원리는 부처 전문성, 기능, 절차 등이 동질적이거나 상호연관성이 높은 경우 이를 한 조직으로 묶어 독립된 조직 단위로 만들어야 한다는 원리이다.
에너지자원의 중요성 때문에 에너지 문제를 관장하는 독립부처를 만들자는 야당 일각의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새 정부는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국정의 권한과 책임을 분산하는 작업을 국정과제로 채택하기를 제안한다. 부처 정책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과감한 권한 분산형 정부조직의 개편을 추구해야 할 것이고, 부처에게 실질적인 정책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의 원리와 실제
통합과 조정의 원리는 분화된 조직들의 조정에 비용이 발생하고 유기적인 협력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많은 거래비용이 발생할 것에 대비하여 궁극적 권한과 책임을 부처의 최고 책임자에게 집중하도록 하자는 원리이다. 정부 부처의 수를 대폭 줄이고 부총리제를 확대 시행하여 업무 중복 부처들을 실무 중심으로 재편하자는 범여권 일각의 주장과 상통한다.
분화의 원리는 정부 부처 간 견제와 균형성을 높여 권력 집중화를 막을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부처 과다 분화로 정부 비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는 한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통합의 원리는 기능조정을 통한 정부 효율을 얻겠지만 특정 부처로 권한이 집중되는 관료제의 문제를 안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조직 개편의 원리는 집권 세력의 정부혁신에 대한 주도적 패러다임에 따라 정해진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정부혁신 패러다임으로 정한 작은 정부와 대부처주의 중심 신공공관리 패러다임을 포기하는 대신 사회적 가치 실현을 최우선가치로 앞세워 소방청과 해양경찰청 복원,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중앙행정기관화, 보건복지부 복수차관제 도입, 질병관리청의 승격 등의 조치를 했다. 이명박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되 민간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공 개혁의 방향을 정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를 추진하면서 제1원칙을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정했고 임기 내내 공공부문의 비중을 축소해 나가는 동시에 교육과학기술부(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의 통합조직)와 기획재정부(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의 통합조직) 같은 매머드급 거대 부처들을 출범시켰다.
역대 정부 정부조직 개편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평가는 생각과 달리 들쭉날쭉하다. 평가자마다 정부 혁신의 주도적 패러다임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 운영 패러다임을 시장 경쟁성 위주로 끌고 나가려 하는 신공공관리주의자들은 대체로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지해 왔지만, 정부 행정에서 중요한 것이 정부 내부의 기획이나 정책 결정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 그리고 다양한 참여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란 점을 강조하는 뉴거버넌스주의 옹호자들은 사회적 가치와 분권 지향적 정부조직 개편에 늘 우호적이다.
김영삼 정부나 이명박 정부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현하는데 정부 혁신의 일차적인 목표를 두었다는 점에서 서로 맥을 같이 하였다면,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대규모 조직개편을 최소화하면서 정부 운영에 있어서 네트워크 거버넌스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이와 같이 역대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의 추구 원리와 논리는 일견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쉼 없이 이어진 정부조직 개편은 국민주권을 올바르게 실현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새 정부는 인수위원회없이 출범하게 된다. 국정 운영상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우선 새 정부가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정부 혁신 패러다임의 관점을 선점하지 못하게 되면 새 대통령의 정책 지향점과 정부조직 간의 격차 때문에 부처 행정이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 국정 공백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연배우가 예행연습 없이 무대에 오르는 우를 범하게 되어 새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6.3 대선 이후 바로 취임하게 될 새 대통령은 조속히 국정과제를 정립하고 과제 수행부처를 중심으로 한 정부 혁신 추진체계를 정연하게 꾸려야 한다. 가볍게 넘길 사항이 아니다. 새 대통령은 대선 승리의 축배를 들기도 전에 냉엄한 국정 현안 챙기기에 돌입해야 하기때문이다. 그중 무엇보다 중요한 새 정부의 과제가 정부조직 개편이다. 새 정부는 역대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의 성과와 한계를 거울삼되, 현직 대통령의 파면을 목도하고 좌절에 빠진 국민에게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정부조직 개편의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에 임하는 새 정부는 국민에게 세 가지 약속을 먼저 해야 한다. 첫째,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되도록 하겠다는 약속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문구를 제대로 실천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국민에 의한 통치가 가능한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법의 지배 안에서 국민이 자유를 누리며 시민적 덕성을 실천하는 견제·균형의 정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정부가 되겠다는 약속이다.
둘째, 새 정부는 정부조직의 ‘민주성’과 공무원의 ‘책임성’을 드높이는 활동을 앞세워야 한다. 공익이 정부의 조직과 공직자 행위에 전사적으로 반영되도록 하여야 하고, 공공가치의 증진을 위한 정부와 공직자의 역할이 중요함을 절실히 인식하고 국정을 다스려야 한다.
견제와 균형, 공공가치, 권한위임 기반
셋째, 대통령 스스로 ‘내가 다 챙긴다’라는 욕심을 버리고 수직적, 위계적 정부 운영 시스템을 혁파하여 과감한 권력 분산과 권한위임을 하여야 한다. 권력 분산과 권한위임을 통해 정부 조직 전체가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변화가 유발되도록 하여야 한다.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 정치와 경제의 엄중한 상황 속에서 이들 약속을 지키려면 상당 기간의 노력이 투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상황 인식하에 새 정부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정부조직 개편이란 막중한 책임을 다해야한다. 첫째, 국정운영에서 견제와 균형성을 회복하기 위해 거대 부처 출현을 경계해야 한다. 거대 부처 중심의 대규모 통폐합을 시도했던 정부마다 실패를 거듭했다는 평가가 강하다(남궁근, 2022: 376).
복수 조직들을 합병한 대부처체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합병 대상 조직들의 문화를 결합하기 위한 막대한 통합비용 지불이 필요하고, 융합관리에 드는 추가적인 고통이 뒤따른다. 비상시국에서 출범하는 새 정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과거 내무부와 총무처의 행정자치부로의 합병,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의 재정경제원으로의 통합,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쳐 기획재정부란 거대 부처를 출범시킨 이명박 정부의 사례에서 새 정부가 택해야 할 길이 보인다.
현안 대응 부처와 중장기 전략 수립 부처가 합병되면 장관의 관심이 현안 대응에 집중되어 중장기 국정과제나 국가 미래 전략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둘째, 새 정부는 국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기능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확대 강화해나가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 공공가치 증진 활동을 주도해야 한다. 경제와 사회 분야 부처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에 주력해야 한다.
여권 일각에서 여성가족부 등 존재 사명이 퇴색한 부처를 통폐합하고, 환경부나 중소벤처기업부 등 주요 부처를 실무 위주로 재편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이와 같은 주장을 하기에 앞서 정부조직이 챙겨야 할 공공가치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필요한 정부 기능이 무엇인지를 먼저 조사하여 우선순위를 정하는 작업을 하여야 할 것이다.
오히려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 산업진흥, 통상협상, 에너지자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통상 부문과 산업진흥 파트를 독립 부서로 분리 독립시키고, 에너지자원 부분도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춰 환경부 등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새 정부는 권력 분산형 정부조직 개편에 돌입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국정의 권한과 책임을 분산하는 작업을 국정과제로 채택하여 진행하기를 제안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공식적인 심의기관으로 국무회의를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실에 상대적으로 강한 정책기획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새 정부는 부처 정책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과감한 권한 분산형 정부조직의 개편을 추구해야할 것이고, 부처에게 실질적인 정책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실 기능 축소도 고려될 수 있고, 행정 각 부 중심으로 국정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국무총리도 실질적으로 국정 분담을 할 수 있고 공직사회 전반에 활력이 생길 것이다. 빙산의 일각만 다루었다. 새 정부가 헤쳐나가야 할 파고는 여러 갈래일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의 파고도 분명 그중 하나일 것이다. 전문가나 공직자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목소리를 잘 경청하여 새 정부가 더 나은 정부조직으로 국정을 제대로 챙기는 모습을 보여서 성공하는 정부로 역사에 남길 바란다.
출처: 2025 월간 헌정 6월호「새대통령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