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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과 맞바꾼 2벌타 자진신고… PGA 사상 가장 ‘값진 패배’[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토머스와 데이비스의 정직함
15년전 RBC 헤리티지 대회서
연장전 첫홀에 나선 데이비스
베어진 상태였던 갈대 건드려
경기위원에게 벌타 확인 요청
아직 우승 없어도 역사에 남아
올해 우승한 저스틴 토머스도
돌 치우다 공 움직여 벌타 자청
저스틴 토머스(미국)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튼헤드의 하버타운 골프링크스(파71)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RBC 헤리티지에서 3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연장 승부 끝에 어렵게 거둔 우승이었다.
토머스는 2022년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통산 15승을 거둔 후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2022∼2023시즌에서는 페덱스컵 순위가 71위에 그치며 데뷔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플레이오프 최종전까지 진출하는 등 기량이 점차 회복되었으나,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보다 우승이 절실했던 그에게 우승 기회가 찾아왔다. RBC 헤리티지 대회 첫날 11개의 버디로 61타 코스 최소타 타이 기록을 세우며 3타 차 선두로 나선 것이다. 2타 차 선두를 지키며 순항하던 토머스는 대회 3라운드 2번 홀에서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티샷이 살짝 당겨지면서 공이 페어웨이 좌측 웨이스트 구역에 빠졌고, 다음 샷을 하기 위해 공 주변의 잔돌을 치우던 토머스는 공이 밑으로 살짝 움직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곧바로 경기위원을 부른 토머스는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벌타를 받고 경기를 재개한 토머스는 다행히 파로 홀을 마쳤으나, 한 조로 출발했던 김시우가 첫 홀에 이어 연속 버디를 잡으면서 순식간에 순위가 공동 1위로 바뀌었다.
대회 마지막 날 공동 2위로 출발한 토머스와 앤드루 노바크(미국)는 나란히 3언더파를 치며 공동 1위에 올라 연장전을 치르게 되었다. 연장 첫 홀에서 노바크의 10.2m짜리 버디 퍼트가 조금 짧았던 반면, 토머스는 6.4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1064일 만에 감격스러운 우승을 차지했다. 자칫 우승을 놓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본인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실수를 솔직히 고백하고 벌타를 받은 토머스의 용기는 언론과 골프 팬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15년 전에도 이 대회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에는 미국의 짐 퓨릭과 영국의 브라이언 데이비스가 연장전에서 우승을 놓고 맞붙었다. 연장 첫 홀에서 7번 아이언으로 핀을 직접 노린 데이비스의 두 번째 샷이 조금 왼쪽으로 빗나가 그린 프린지에 맞고 그만 옆의 워터해저드로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썰물로 물이 빠지고 없는 상태라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데이비스는 세 번째 샷을 그린에 무사히 올렸다.
하지만 샷을 할 때 뭔가를 건드린 느낌을 받았던 데이비스는 바로 곁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경기위원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경기위원은 녹화된 중계방송 영상으로 데이비스가 백스윙 때 해저드 내에 베어져 있던 갈대를 살짝 건드린 것을 확인했다. 느린 화면으로 봤을 때만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아주 가벼운 접촉이었다.
땅에 박혀 있는 갈대라면 별문제가 없지만, 베어진 상태의 갈대는 루스 임페디먼트(자연 장해물)로 간주된다. 지금은 규칙이 바뀌어 벌타가 없지만 당시에는 해저드 내에서 루스 임페디먼트를 건드리면 2벌타를 받았다.
결국 벌타를 받은 데이비스 대신 파를 한 퓨릭이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PGA투어에 데뷔했지만 이 대회 전까지 준우승만 4차례 했을 뿐 우승이 없었던 데이비스로서는 169번째 출전 끝에 잡은 생애 첫 PGA 투어 우승 기회였다.
대회가 끝난 후 데이비스는 상실감에 힘들었지만 진정한 골프의 정신을 보여준 그의 스포츠맨십에 감동한 전 세계 골프 팬들로부터 엄청난 응원의 편지와 격려 메시지를 받았다.
토머스와 달리 아쉽게도 데이비스의 벌타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난해까지 총 386경기에 출전해 우승 없이 준우승만 5차례 기록한 채 올해로 만 50세를 맞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역사로 영원히 남았다. PGA투어는 2020년 홈페이지에 1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 기사를 올리면서 ‘PGA투어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패배 중 하나’라는 헌사를 그에게 바쳤다.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