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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칼럼] 청와대 이전과 관련하여 보내는 감사의 편지 / 이호선(법학부) 교수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Y에게.
참, 여러 가지로 고맙네. 지난 21일 아침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어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당선인의 청와대 이전에 협조할 것이라는 말을 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아, 이게 아닐텐데’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네. 탈(脫) 청와대라는 상징적 공약을 못 지켰지만 숟가락이라도 얹어서 생색을 내는 게 좋겠다는 실용적 결론을 내렸는가 싶었지. 하지만, 바로 그날 오후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더군. 북한이 ‘불상’인지 ‘미상’인지를 숱하게 날릴 때도 별무반응이던 청와대에서 갑자기 방사포 4 발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는 안보 공백을 이유로 임기 내에 용산 내 국방부 이전 불가를 못 박는 걸 보고 역시 제 버릇 못주는 개 생각이 났다네. 뭐, 어쩌겠나. 태생이 그 모양인데 모든 게 자업자득이지.
아직도 모르겠나.
자네들이 만지면 뭐든지 커진다는 걸. 그리고 그 커진 것이 자네들에게 배나 큰 부메랑이 되어 온다는 것을. 검찰총장 윤석열을 차기 대통령 윤석열로 만든 것이 바로 자네들 아닌가. 폼생폼사로 살던 위선자 조국 하나 법무장관 시키고, 대권 이어받게 해 보겠다고 그 난리치는 바람에 국민들이 자네들 실체를 보기 시작했지. 여기에 실성한 사람 널뛰듯 하던 추미애라는 사람이 되도 않는 ‘검찰개혁’과 ‘수사지휘권’으로 윤석열을 조진다는 것이 그만 국민들 염장을 지르고 말았지 않았는가. 그렇게 건드리고, 만져서 자기 발등 자기가 찍었으면 이젠 족한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걸 보니 역시 하늘의 법은 살아있네. 종말의 심판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도록 놔 두시는거지.
웃자고 했는데 죽자고 달려든다는 말이 있는데, 윤석열 당선인 쪽은 실용으로 접근했는데, 자네들은 명분과 정치로 너무 나갔네. 좀 체면이 깍이더라도 슬쩍 숟가락 얹어서 탈(脫)청와대 시대를 같이 열었다고 하면 되었을 것을 알뜰하게 모든 걸 챙기려다 이제는 양쪽이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되고 말았네. 이렇게 키운 판에 승자는 누가 될까. 자네들은 짐작하고 있겠지. 용산 아니면 어디라도 청와대가 가는데 협조하겠다는 말 속에 전략적 후퇴가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노련한 반역적 반대의 노림수가 있어 솔직히 좀 불쾌하긴 하네.
차기 대통령이 탈청와대를 추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인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네. 그렇지만 자네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공간’이 ‘공화주의적 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 준다네. 르네상스 도시인 피렌체, 로마의 딸로 자처하며 민주공화정의 모범을 보였었던 이 도시국가에서 저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 최초로 추방당한 사건이 있었다네. 1433년의 일인데, 죄명이 뭔지 아는가. "보통 시민들보다 자신을 더 높은 지위에 두려고 기도"하였다는 혐의였네. 그 증거는 바로 메디치 가문이 지으려는 저택의 설계도가 공화정의 보통 시민들이 주거하는 공간보다 지나치게 과시적이며, 잠재적인 독재자의 궁정을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네. 다른 시민들보다 높아지려고 한다는 말은 곧 공화정에 대한 반역이라는 것이 시민들의 인식이었지.
이 보다 더 분명한 사례는 고대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지. 파라오(Pharaoh)가 원래 무슨 뜻이었는지 아는가? 지금은 절대적 권력을 가진 왕을 지칭하는 이 말은 원래 ‘큰 집(great house)’라는 뜻으로 쓰였고, 기원전 15세기경 이집트 18왕조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까지는 사람 앞에 붙는 말이 아니었다고 하네. 우리로 말하면 대갓(大家)집 정도가 나중에 ‘독재자’로 된 것이지. 그런 점에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은 일응 타당해 보일 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정치적 서열과 권력관계를 규정짓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겠나.
차기 정부에서 이런 의미까지 염두에 두고 청와대 아닌 곳에 집무실을 두겠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건 지금의 청와대는 ‘우리 의식과 관행에 ’국민 위의 국민의 존재‘를 당연하게 만들어 오는데 일조한 것에는 자네들도 동의하겠지.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함께 맥주 한잔 하는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했었던 것 아니겠나.
그런데 이제 와서 윤 당선인의 탈청와대에 대하여 아침에는 협조, 저녁에는 거부로 돌아선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말해 보세. 청와대 이전 반대로 촛불 한번 켜보자고, 그래서 내친 김에 지방선거 전에 신정부 한번 확 흔들어 기를 꺽어 식물 정부 만들어 보자는 그런 심산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걸 알고 있네.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지.
그래 바로 그것일세. 자네들 스스로 잘한다고 자부하는 역사에 대한 규정과 낙인에서 졸지에 궁극적 패자가 되었음을 인식하였기 때문이지. 탈청와대는 구체제의 종식이지. 한 백년 쯤 지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게 그거 같은 제1공화국, 제2공화국...이런 식으로 기억하는 대신 청와대 시대와 그 이후 시대로 구분할 걸세. 그렇게 되면 자네들은 구체제의 마지막 정권이 되는 거지. 촛불혁명을 내세우며 자신만만하게 2-30년 집권을 운운하던 자네 패거리가 종말을 고하는 한 시대의 초라한 문지기로 문을 닫게 되었다는 이 사실이 뼈아프게 자각되는 순간 죽기 살기로 이 불명예와 치욕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발버둥치기 시작한거지. 어설픈 이념 서적을 통해 역사법칙을 알고, 혁명의 전위대를 자처했던 자네들로서는 뿌리가 뽑혀져 나가는 고통일 것이고, 사실 앞으로 이건 피할 수 없는 자네들의 운명일세.
그래서 기껏 궁리해낸 것이 안보 공백을 핑계로 신 정권이 하루라도 청와대에 들어가 살면서 이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른바 ‘속도조절론’, 용산 아니면 다 협조하겠다는 ‘용산불가론’인데, 그건 안 될 말일세. 청와대에 일단 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자네들이 보여주었던 ‘권력의 호사’라는 ‘장물’을 같이 나누고, 같이 오염되자는 속셈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구체제의 마지막 상징으로서 또렷한 청와대의 마지막 인물이 자네들 운동권 586이었음을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그 영광을 기꺼이 자네들에게 줄테니 사양하지 마시게. 그러니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신정부가 청와대를 코앞에 두고 통의동에서 집무를 시작하더라도 너무 서운히 여기지 마시게. 그 짧은 통의동 시대는 또 다른 자네들의 저열한 행태를 보여주는 역사적 스토리가 될거야.
이전 시기는 그렇다 치고 “용산 아니면 협조하겠다”는 자네들 말은 ‘아무 말 대잔치’ 아니면 정말 반역적인 생각이군. 안보 공백론도 그렇다네. 윤석열 당선인의 안보공약 핵심 중 하나가 북한이 핵으로 공격해 올 조짐이 보일 경우 선제타격론일세. 선제타격의 오류없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대통령과 국방부, 합참이 가능한 지근거리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과 국방ㆍ합참이 한 군데 있어 위험하다는 논리도 빈약하기 그지없네. 양 쪽이 떨어져 있어 어느 한 쪽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다른 한 쪽이 정상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피렌체에 가면 벨베데레 옛 요새가 있는데, 그곳에 대포들은 성 밖이 아닌, 시내를 향하여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더군. 메디치 가문이 군주정을 하면서 외적 보다는 시민들의 저항을 더 염려했다는 말이지. 집권 5년 동안 휴전선에서 서울로 향하는 도로 상의 대전차 방어시설을 허무는 등으로 안보 공백이 아니라 안보 구멍을 만들어 놓고, 포신을 대한민국으로 돌려 놓았던 자네들이 안보 공백 운운하니 참으로 우스운 일 아닌가. 그만큼 속이 타들어간다는 말이겠지.
자네들은 탈청와대의 새 역사를 풍수·무속으로 엮어 보려고도 안간힘을 쓰는데, 마지막 청와대의 주인이 될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많은 전임자들이 청와대를 벗어나려 했다는 것도 설마 그래서였다는 말인가. 미안하네만 용산으로 집무실 이전이 풍수나 무속과는 관계없다는 건 아주 오래 전에 고증된 바 있다네. 조선 시대 대표적 지식인 중의 한 명인 서거정(1420~1488)이 쓴 <필원잡기>에 고려 숙종 때 풍수지리를 쫓아 수도를 옮겨 볼까 하고 윤관 등을 목멱 땅을 살펴보게 했는데, 답사자들의 보고서에 “용산(龍山)·노원(蘆原)은 도읍지로 적당하지 않고, 삼각산 앞 남쪽은 산세와 물길이 수도로 괜찮다”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지. 그러니 풍수 따라 용산으로 이전한다는 말은 다시 입에 담지도 말게나. 오히려 용산은 사대문 밖에 있으니 서민ㆍ대중의 풍모에 합하니, 공화정의 이상에 맞는 곳 아닌가. 게다가 박은식(1859~1925) 선생의 《한국통사》에는 용산을 일러 “용산은 또한 용호(龍湖)라 하는데 바다의 조수를 통하여 8도의 조운 및 여객ㆍ화물이 와 닿는 곳”이라 했으니, 정치 과잉의 대한민국을 민생과 경제 중심으로 이끌어 갈 심장부로 가히 실용적 길지(吉地)라 할 만 하지 않은가.
자네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역사의 물결’은 자네들을 저 질척이는 강변 진흙 속에 퇴적물과 함께 갖다 놓고는 도도한 바다로 새롭게 흘러가는 중일세. 박빙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고 ‘졌지만 잘 싸웠다’고 위안 삼는 건 자네들 마음이고, 정신승리니까 뭐라 할 말이 없지만, 하늘이 심판을 내리는 건 악인이 악을 멈추지 못해 스스로 자초해서 그렇다는 말을 다시 실감하게 되네.
‘청와대 이전’을 정쟁화한 것은 자네들의 큰 실수일세. 물론 내가 그걸 걱정할 건 아니지만 말이야. 광우병 괴담과 촛불로 MB 정권을 초기에 무력화시켰던 그 달콤한 투쟁의 기억 때문에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막 출범하는 정권을 좌초시켜 기선을 제압하고 내친 김에 2024년 총선에도 180석 의회 독재를 이어가겠다는 노림수 같네만 그게 뜻대로 될까. 벌써 촛불을 켜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자네들 구시대를 태우는 촛불이 될 걸세. 자네들은 단 하루라도 신 정권이 자네들과 구시대를 공유하길 바라길 원하겠지만, 그건 덧없는 희망에 지나지 않아. 통의동 출퇴근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면 새 대통령이 간이침대 하나 갖다 놓고 거기서 두어 달 지내면 되지. 저녁엔 가끔 광화문 나가 시민들과 치맥 파티도 하고. 촛불로 생맥주를 데울 수는 없겠지만, 생맥주로 촛불을 끄기에는 충분하다고 보는데 자네들 생각이 궁금하군.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면서 영웅이 이끌고, 거목이 필요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네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네. 더구나 어느 새 청와대가 잡목과 쑥부지깽이로 뒤덮이기 시작했음에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맹목(盲目)의 구체제가 가고, 개명(開明)의 새 시대가 오고 있네. 어째 자네들이 새 정권의 발목을 잡을수록 새 정권의 성적표는 자네들의 뜻과는 반대로 나타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지 않는가. 역사의 큰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우연한 물결 하나로 시작되는 법일세. 어찌 보면 정작 탈청와대를 추진하는 쪽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의미를 자네들이 부여하고, 스스로 상처입고 발광하는 바람에 구체제와 신체제의 선명한 경계가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네. 이것 또한 자네들의 공이 지대하네. 다시 한번 감사드리네.
아, 참, 청와대 마지막 집 주인의 방은 몰락 왕조의 마지막 거주자들의 그것처럼 보존되어야겠지. 거기에 국고로 사 입었다는 청와대 마지막 대통령 부인의 입이 떡 벌어질 각종 명품 옷들과 고가의 액세서리 들을 전시하면 아주 생생한 역사 교육장이 될 수도 있겠군. 돌려받지 못하면 사진이라도 붙여서 전시하면 되겠지. 그리고 거기에 자네들 이름이 없다고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 어차피 자네들은 맹목의 체제를 폐업으로까지 이끌었던 주인공으로 같이 기록될 것이니 말일세.
앞으로도 자네들의 자승자박의 건투를 성원하면서, 이만 줄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