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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도 넘은 정권 말 낙하산 인사 / 홍성걸(행정학과) 교수
대선을 불과 50여일 앞둔 시점에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가 도를 넘었다. 임명된 공공기관의 임원은 사실상 다음 정권에서 3년 임기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결국 국정철학이나 가치, 이념이 다른 공공기관장들이 새 정부 집권 후 3년 가까이 일하게 된다는 말이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주무 부처와 공공기관 사이에 상당한 불협화음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은 자신의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며 큰소리쳤지만, 집권 후에는 예외 없이 능력이나 자격조건에 관계없이 수없이 많은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냈다. 정권이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임원 자리를 사실상 전리품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선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보은을 위해 공공기관의 임원 자리를 활용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버렸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 행정학
문재인정부 말기의 낙하산 인사가 더욱 관심을 끄는 이유는 환경부 김은경 전 장관이 낙하산 인사를 위해 당시 현직에 있던 인사들을 강제로 물러나게 한 소위 ‘블랙리스트’ 사건이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판례로 인해 향후 정권 말에 임용된 공공기관 임원들은 버티기만 하면 임기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임기 만료 6개월 전에는 공공기관에 빈자리가 생겨도 이를 대행체제로 운영함으로써 다음 정권에서 인사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예의’였으나 문재인정부는 그런 염치도 없다. 비어 있는 자리는 물론 임기 내 비게 될 자리까지 모조리 채워 차기 정부의 인사권 행사에 걸림돌을 만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취임사에서 정파에 관계없이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했었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재인정부의 낙하산 인사는 그래서 더욱 파렴치하다고 평가받는다. 문재인정부의 임기 말 인사권 전횡이 다음 정부에서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이제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과도한 인사권의 전횡을 최소화할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최근 제시되고 있는 대안이 한국판 플럼북(Plum Book)을 만들자는 것이다. 플럼북은 미국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진 연방정부의 관직 일람이다. 매 4년마다 대선 직후에 보완되는 플럼북에는 약 9000개의 자리에 자격과 능력조건들을 명시하여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공개채용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사전에 내정된 사람을 임명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임용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가 7000여개 정도라고 한다. 이 자리들의 직무기술서를 명확히 제시하고 임원추천위원회를 정부나 집권 여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구성해 운영한다면 플럼북 제도를 시도해 볼 만하다.
그러나 모든 자리를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임용하려 한다면 기득권을 잃게 될 집권 여당의 반대로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공공기관 중 기관장이나 임원의 역할에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일부 자리에 대하여는 아예 정무적 판단을 통한 임용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두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자리는 정권교체와 함께 잔여 임기에 상관없이 일괄 사직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반면 금융이나 산업, 혹은 과학기술 분야 등 기관장과 임원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는 무늬만 경쟁이 아니라 정말 공개경쟁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리는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민주적 정치과정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 임원들에 대한 인사를 포함한 자의적 인사권의 행사가 가능한 것도 민주주의의 바람직하지 못한 부산물의 하나다. 완벽한 제도를 지향하기보다는 낙하산 인사로 인한 폐해가 큰 자리부터 인사권의 전횡을 막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점진적 개선을 시도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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